미국의 역사1, 2로 나누어서 알아봅시다.
식민지의 시작과 독립투쟁
국가의 탄생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식민지 시대로, 미국의 기틀을 마련한 중추적인 시기였다. 17~18세기에 대서양 연안에는 주로 영국 출신의 유럽인 정착민들이 식민지를 건설했다. 제임스타운과 플리머스를 포함한 이 초기 정착지는 어려움으로 가득했지만, 결국 번성했고, 이에 따라문화와 전통이 독특하게 혼합되었다.
이들 식민지는 유럽의 다양한 영향력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과의 상호작용을 반영하며 서로 다른 정체성을 형성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식민지에서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이 뿌리내렸고, 특히 담배와 면화를 비롯한 농업이 경제적 초석이 되었다.
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같은 식민지 도시의 자갈길을 거닐다 보면 영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불안이 고조된다. 우표법이나 타운센드법처럼 대표성 없는 세금을 부과하자 분노가 팽배했다. 1770년 보스턴 대학살은 반영국 정서를 더욱 증폭시켰다.
혁명의 씨앗은 1773년 보스턴 티파티와 같은 사건에서 뿌려졌는데,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 차를 보스턴 항구에 버림으로써 타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무력 충돌의 발단은 1775년 렉싱턴 전투와 콩코드 전투였다. 이러한 사건의 정점은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이 채택된 제2차 대륙회의였다. 주로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한 이 문서는 식민지 주민들의 자유와 자치에 대한 열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뒤에 벌어진 독립전쟁은 치열한 독립전쟁이었다. 새러토가나 요크타운 같은 주요 전투는 미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식민지에 유리하게 하는 데는 외국 동맹국, 특히 프랑스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
이 시대는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끝이 났다. 그 젊은 나라는 새로운 정부를 만들고 그것의 정체성을 정의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에, 전쟁의 종료는 도전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대 동안 확립된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상은 계속해서 앞으로 세대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남북전쟁: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선출은 미국의 진로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노예제도의 확대를 반대하는 그의 입장은 몇몇 남부 주들의 분리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 남부 연합국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 저항 행위는 미국의 운명과 국가의 기본 원칙을 결정할 4년간의 투쟁인 남북전쟁을 촉발시켰다.
그 전쟁은 시골에서부터 주요 도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경에서 벌어졌다. 게티즈버그와 안티탐 같은 중요한 전투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남아있고, 전략적 중요성과 엄청난 인적 비용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신성시되고 있는 이 장소들은 전쟁의 잔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시기 동안 철도의 전략적 사용에서 철갑함의 도입에 이르기까지 기술적인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합의 산업력과 더 많은 인구가 궁극적인 승리의 핵심 요소였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전쟁을 연합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위한 싸움으로 재구성하면서 중추적인 순간을 기념했다.
재건: 나라를 다시 하나로 묶다
미국의 승리와 링컨의 비극적인 암살 이후, 그 나라는 재건이라는 거대한 과제에 직면했다. 1865년부터 1877년에 걸친 이 시대는 산산조각이 난 남부의 주들을 재건하고 그들을 연방으로 재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예제를 폐지한 제13차 헌법, 옛 노예들을 포함하여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제14차 헌법, 그리고 인종에 관계없이 투표권을 보장한 제15차 헌법 등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노예제의 뿌리 깊은 부당성을 시정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재건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남부의 저항은 공포와 폭력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하려는 쿠 클럭스 클란과 같은 분리주의 정책과 집단을 만들어냈다. 공화당 내부와 다시 부상한 남부의 공화당과 민주당원들 간의 정치적 갈등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1877년 타협안으로 갈등을 빚었던 재건은 사실상 끝이 났고, 그 결과 남부에서 연방군이 철수하고 짐 크로우 시대가 시작되었다.
남북전쟁과 재건의 영원한 유산
남북전쟁의 상흔과 재건의 복잡함은 미국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전쟁으로 인해 분리와 노예제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인종관계와 시민권에 관한 질문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는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남군의 상징과 이 시대의 해석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은 미국 역사에서 이 중추적인 장과 합의하기 위한 계속된 투쟁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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